6월 항쟁이 어느덧 22주년을 맞았습니다. 6월항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을까요. 6월 항쟁을 직접 겪지않은 세대들이 점차 늘어나고 그날의 정신과 그날의 함성이 점점 스러져 갑니다.
하지만, 올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새삼 그 당시의 절규가 남다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6월 항쟁은 결코 떼어내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당시 선봉에서 목청껏 민주화를 외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 아마 오늘도 그날을 생각하며 하늘에서 이땅을 내려다 보고 계시겠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다시 맞은 6월항쟁을 돌아봤습니다.
1. 노무현 전 대통령과 6월항쟁
1987년 6월29일 전국의 모든 국민들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통령후보의 직선제 개헌 수용,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면복권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6.29선언’을 지켜보며 환호성을 내질렀습니다.
기나긴 6월항쟁이 조그만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6월 항쟁 당시 부산은 서면과 남포동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수십만 명의 시민들을 주도적으로 이끈 ’6월 주역'들은 누구이며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당시 ‘부산항쟁'을 주도한 단체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였습니다. 이 단체의 대표적 인물중의 한사람은 노무현 당시 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 상임집행위원장입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부산본부는 시위 행렬이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범내골로터리 4층 건물 맨 위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간판도 없는 열평 남짓한 이 사무실은 당시 건물을 뒤덮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민들과 함께했습니다.
이 건물은 두 건물 사이를 증축한 독특한 구조 때문에 경찰의 감시를 피해 사무실 옥상을 통해서 다른 건물 입구로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당시 사무실을 빼라는 기관들의 압력에도 건물주인은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이곳은 오늘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생한 모습이 남아있는 뜻깊은 곳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75년 제17회 사법고시를 합격합니다. 77년 대전지방법원 판사 임용뒤 그만두고 변호사를 개업합니다. 1981년 부림사건 이후 인권변호사로 활약합니다. 이후 86년부터는 민주화 운동에 전념해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부산본부의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6월 항쟁의 주역이 됩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재야인권변호사로서 활동하다 6월항쟁을 통해 일약 민주화투쟁의 핵심인물로 부상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노 전대통령은 이후 88년 4.26총선에서 5공화국의 대표적 인사를 물리치고 화려하게 국회에 진출, 청문회 등을 통해 대중정치인으로 데뷔합니다.
2, 6월 항쟁은
군사독재정권에 항거해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국민들이 들불처럼 일어섰던 6월 민주항쟁이 올해로 22주년을 맞았습니다.
6.10항쟁은 아이들부터 60대 어르신들까지, 직장인에서 대학생 부두노동자 구두닦이에 이르기까지 세대와 직업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 십만명의 시민들이 87년 6월10일 이후 6월29일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대통령의 6.29 선언이 나올 때까지 목이 터져라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쳤던 해방이후 최대의 민주항쟁이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1월 14일 당시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되었던 부산출신의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그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고문살인 사건의 진상이 폭로되면서 군사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박종철 열사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는 대규모 집회로 나아갔습니다. ‘고 박종철군 국민추도회준비위원회’가 주최한 2월 7일 추도식 집회와 3월 3일 ‘고문추방 민주화 국민평화대행진’은 당국이 경찰력으로 막았으나 오히려 부근에 있었던 시민들의 호응을 받을 정도였고 거리에서 경찰에 대한 비난이나 항의 등의 형태로 시민들이 점차 시위에 참여하기 시작합니다.
정세를 오판한 군사정권은 4월 13일 개헌논의를 일체 금지하고 현행헌법으로 대통령선거를 하겠다는 ‘4 · 13호헌조치’를 발표합니다. 그러자 대한변협 개신교 민통련 등이 호헌반대선언을 하고 정의구현사제단과 천주교신자들이 단식투쟁에 들어갑니다.
각 대학교수, 문학인, 전 · 현직 의원, 변호사, 교사, 대학원생, 의사, 약사, 한의사, 간호사, 영화인, 연극인, 미술인 대중연예인 등 각계에서 4 · 13호헌조치 반대 성명서가 나오고 기자들은 자유언론쟁취운동을 벌였습니다.
'4·13호헌선언’은 마른 장작에다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고, 이한열열사의 최루탄 피격은 국민들의 분노를 극도로 자극하였습니다. 이리하여 군부독재 종식과 직선제 개헌을 위한 6월민주항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3. 간단하게 정리해본 6월항쟁
1987년 1월14일 박종철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3월3일엔 ‘고 박종철열사 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가 전국 주요 도시에서 ‘고 박종철열사 49제’와 ‘고문 추방 국민대행진’ 을 진행합니다.
4월1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개헌 논의를 유보하고 현행 헌법으로 정부 이양을 한다’는 내용의 ‘4.13 특별 선언’을 발표합니다. 5월18일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진상을 폭로합니다. 5월27일 ‘민주헌법 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발족하고 4·13 호헌조치 철회 및 직선제 개헌 공동쟁취 선언을 합니다.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열사가 교내 시위 도중 직격 최루탄에 피격당합니다. 6월10일 국본,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개최, 6월 민주 대항쟁 시작, 명동성당 농성 투쟁 시작합니다.
6월15일 전국 45개 대학생 68,000여명 격렬한 시위를 하게 됩니다. 6월18일 국본, 전국 주요 도시에서 ‘최루탄 추방결의대회’가 개최되고 전국적으로 150만명이 참가합니다.
6월26일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 전국 33개 지역에서 180여만 명이 시위에 참가하고, 6월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6.29선언’을 발표,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구속자 석방 등 시국 수습을 위한 8개항을 선언합니다.
4. 부산의 6월 항쟁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독재정권이 자행한 민주화세력에 대한 살인행위로 규정한 부산시민들과 ‘부산민주시민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부산 재야인사들은 박종철열사의 추도집회를 준비하며 독재정권에 대한 항쟁의 신호탄을 올립니다.
2월7일 전국 각지에서 동시에 개최된 추도회를 계기로 군사정권은 재야인사에 대한 사전 가택연금, 연행, 구속 등의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3월3일 부산의 대각사 앞에서 ‘박종철열사 추모 3.3 부산대행진’이 열렸고 사하구의 사리암에서는 경찰의 삼엄한 경비속에 박종철열사 49재가 열립니다.
4.13 호헌조치를 계기로 ‘호헌’의 부당함과 시국수습을 촉구하는 지식인의 시국선언이 연이어 발표됩니다.
5월17일엔 노동자인 황보영국열사가 옛 부산상고 앞 복개도로에서 ‘독재타도 호헌철폐 광주학살규명’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합니다.
5월20일 전국에서 가장 먼저 ‘민주 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가 결성돼 부산지역 6월항쟁을 이끌 지도부가 꾸려집니다.
6월10일 대각사 앞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던 ‘고 박종철열사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가 경찰에 의해 원천 봉쇄되자 대학생과 재야인사들이 부산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이게 됐고 여기에 시민들이 시위대에 가세하면서 6월 항쟁은 본격화되기 시작합니다.
6월16일 심야시위 도중 경찰에 밀린 시위대가 대청동 가톨릭센터로 피신하면서 가톨릭센터 농성을 전개하게 됩니다.
6월18일, 좌천동 입체교차로에서 시위하던 이태춘열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6월 18일 최루탄 추방의 날 부산은 30여 만명의 시민들이 서면 로터리를 중심으로 8차선 도로를 가득 메웁니다.
5. 오늘날 6월 항쟁의 의미는
6월 항쟁은 국민들의 항쟁으로 급기야 독재정권의 항복을 받아냈고, 문민정부가 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으며, 이후 민주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6월 항쟁에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의 염원이었던 참다운 민주사회, 강제와 억압이 없고 억울한 희생자가 없는 사회가 오늘날 이땅에 이뤄졌을까요.
6월 항쟁은 올해로 벌써 2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금 과연 ‘참다운 민주사회’일까요. 오늘날 아직도 해야할 과제가 많은 6월 항쟁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남아 있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6월 항쟁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이 당시의 절규를 모르고 자란다는 게 참으로 아쉽습니다. 또 그들에게 6월 항쟁의 정신을 오늘날 구현해 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도 있습니다.
비록 6월 항쟁은 벌써 22년이 흘렀지만 그날의 정신과 그날의 함성은 두고두고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또 후세대들에게 그 정신을 영원히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돋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체투시안경은 없었다…블로깅 윤리강령 제정 필요? (8) | 2009/06/22 |
|---|---|
| 끔찍한 투시안경?…자극적 포스팅 양심부터 투시해봐야! (18) | 2009/06/15 |
| 6월항쟁을 맞은 오늘 우리는 어디로? (49) | 2009/06/10 |
| 어, 부산블로거들 팀블로그 '엔조이 부산넷' 시작했네! (32) | 2009/05/18 |
| 운전면허증 갱신기간 1년이 지났네!…아찔했던 사연 (62) | 2009/04/29 |
| 프로야구 롯데기사 사진에 사진이 없네! 무슨 일일까? (18) | 2009/04/26 |
Trackback : http://semiye.com/trackback/463
-
Subject 610민중항쟁.작년 세종로 가득한 시민들의 외침 "이명박은 물러나라"
2009/06/10 10:03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직선제를 쟁취했었던 87년 610항쟁. 우리는 그 소중함을 이명박 정부들어서 느끼고 있습니다. 나의 소중한 한표가 5년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또 다시 610항쟁 기념하는 날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다시는 자신의 소중한 주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시는 자신의 소중한 주권을 허비하지 않겠다고 모여서 외쳐야 합니다. 작년 610항쟁 후로 당선된 교육감이 누구입니까? 공..
-
Subject 작년 610항쟁 시청을 장악한 종교단체 모습입니다.
2009/06/10 10:03
보수란 무엇일까요? 북한 비난하면 정통보수가 되나요? 북한과 대결하면 정통보수인가요? 한나라당 지지하면 보수인가요? 보수는 자신을 헌신해서 정의를 지킬 줄 알아야 하지 않나요? 민주주의 파괴가 정의인가요? 직선제 쟁취한 날을 기념하는게 보수에게는 보기 싫은 장면인가요? 시민들은 미리 장악된 시청 광장안에서 촛불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
Subject MB, 서울광장에 초대형 닭 방목장 건설. 당분간 집회금지령.
2009/06/10 10:07
서울광장에 닭 방목장 건설결정. 세계최대의 도심농업. MB와 오세훈시장. 국민보다 닭 키우는게 경제살리기라고. 정부와 서울시는 최근 개방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 잔디밭을 이용한 친환경 닭 방목장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정부가 서울시로부터 서울광장 부지를 임대받아 건설할 예정일 친환경 닭 방목장은, 서울광장 전체 크기의 세계최대, 세계최초 도심 닭방목장이다. 이 방목장은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의 랜드마크로 육성될 계획이며..
-
Subject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2009/06/10 10:49
오늘이 6월 항쟁 22주년 되는 날입니다. 22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의 호헌선언에 맞서 전 국민이 들고 일어서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화를 쟁취했는데요. 그 당시 서울 시청 앞 거리는 민주화와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22년이 지난 지금, 서울광장은 닫힌 공간이 되고 있는데요. 오늘 서울광장에서 열기로 한 6월 항쟁 범국민대회가 열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시청은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하지 않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번 대회를..
-
Subject 87년 6월항쟁때 기득권층은 뭘 했을까
2009/06/10 11:37
1987년 4·13 호헌조치에서부터 6·29 대국민 항복선언에 이르기까지 전국민적인 분노가 불타오르던 시기, 당시 기득권 세력들은 뭘하고 있었을까. 전두환의 4·13 호헌 발표가 있던 그날 유일한 지역신문이었던 < 경남신문>의 1면은 '현행헌법으로 내년 정부 이양' '고뇌에 찬 역사적 결단' 등 기사로 도배됐고, 사회면 머리기사도 '안보·안정 다지는 불가피한 조치' 였다는 것은 앞에서도 밝힌 바 있다. 그 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의 보도도 정권옹호..
-
Subject “민주주의 위협하는 왜곡선동 세력”이라?
2009/06/10 11:47
서경석 목사가 보낸 시국선언 메일 서 목사, 제발 그 입 좀 다물라! 서경석 목사가 보내온 메일이 있었다. 오늘 보낸 메일 제목은 ‘지식인 성명서에 지지서명을 호소합니다.’였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교수...
-
Subject 보수단체들의 향수, 나는 빨갱이가 싫어요.
2009/06/10 13:09
'6.10 민주항쟁 기념일'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말자. '6.10 민주항쟁 기념일' 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 앞다투어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는 요즘, 한 보수단체의 '성명서'와 관련된 기사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군부독재의 서슬퍼런 감시하에 있던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이란 구호가 여기저기 붙어있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원색적인 발언이다. (자료 : 한겨례 21) '반국가..
-
Subject 87년 6월항쟁과 부산, 그리고 노무현
2009/06/10 16:39
87년 6월항쟁, 부산에는 노무현이 있었다 오늘은 87년 6월항쟁이 일어난 지 꼭 22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2009년 6월과 달라진 것이 전혀 없습니다. 당시 6월항쟁은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뒤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국민들의 열화 같은 개헌 요구를 묵살했지요! 그 일은 6월항쟁이라는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2009년에는 설을 앞두고 용산 철거민들의 절박한 요구를 무시하고 강제진압을 펼치다 6명을 죽음으로..
-
Subject 2009년 6월10일
2009/06/10 20:20
오늘 을 기록으로 남겨두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지나갈까? 오늘은 2009년 6월10일 이다. 6월 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다. 6월 민주항쟁, 6월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으로 불린다. 대통령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간접 선거를 골자로 한 기존 헌법에 대한 전두환 대통령의 호헌 조치와, 경찰의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
Subject 20년전 6월항쟁과 민주주의의 후퇴, 오늘까지 이어지나?
2009/06/11 17:33
유월은 내게 특별한 달이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20여 년 전 군대를 입대한 달이다. 등록금을 댈 형편이 못돼 대학을 더 다닐 수 없었다. 사회적으로는 1987년 6.10항쟁을 통해 그토록 투쟁하고자했던 군부도 타도되었다. 하지만 또 다른 가면을 쓴 전두환 정권의 앞잡이 노태우의 6.29선언에 온 국민이 속아 넘어간 달이 유월이기도 하다. 당시 군부타도의 기회가 있었건만 정치인 김영삼과 김대중은 후보 단일화를 끝내 이루지 못했다. 결국 대한민국의 민주..
-
-
-
-
실비단안개 2009/06/10 10:07
잘 읽었습니다.
큰아이가 20대 중반이지만, 6월 항쟁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같은 세대가 대부분 모를 겁니다.
세미예님의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를 제대로 알면 좋겠습니다. -
-
-
-
-
-
-
-
민주주의 만세 2009/06/10 15:19
그때가 새록새록 생각나네요..정신없이 살다보니 벌써 22년이 지났네요..
정말 최루탄과 함께했던 대학생활이었는데..
너무 많은 목숨값과 바꾼 민주주의인데..
2009년 지금 그 민주주의는 어디에 서있는건지..ㅜㅜ -
-
-
달콤시민 2009/06/10 18:11
너무 잘 정리해주셨네요.. 저도 요즘처럼 근현대사 공부해본적도 또 없는 것 같아요.. 지난 십년간 민주주의가 너무 당연한 공기처럼 느껴져서 실감을 잘 못했었던 것 같아요.. ㅠㅠ
-
라오니스 2009/06/10 19:37
2009년 6월 10일을 맞이하여
민주주의가 뭔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귀한 민주주의를 누르는 사람들...
크게 혼낼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
-
-
악랄가츠 2009/06/10 22:19
으이구 저도 요즘 젊은세대라서 그런지,, 의미도 크게 와닿지않고
무관심한 편인데 ㅜㅜ
반성해야되겠네요~!ㅜㅜ
항상 관심가질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옛날에.. 2009/06/10 22:19
잘 정리해주셔서 감사해요. 부산에서 있었던 6월항쟁때 전 초등학교 4학년이였습니다. 사촌언니를 따라 서면 로타리에 대모하러 갔었어요. 언니가 같이 가자고 했었거든요.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많은 사람들이 가로로 길게 늘어서서 걸었어요. 그땐 그게 뭔지도 몰랐는데... 지금생각해보니 그게 산 교육이였던것 같네요. 초등학교 2~3학년쯤엔 항상 서면을 지나쳐 버스타고 다녔었는데.. 항상 체류탄 가스를 맡을수 있었어요.요즘에는 체류탄 가스는 없지만 물대포가 있죠... 변한게 별루 없는거 같네요.
-
세미예 2009/06/10 23:07
그랬군요. 전 대학생으로 현장에서 앞장섰습니다. 체루탄과 지랄탄 그 독한 가스를 마셔가면서 민주주의를 지켜냈습니다. 그래서 결코 이날을 잊을 수가 없군요.
-
-
-
세미예 2009/06/10 23:09
역사는 의미를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요. 후대의 역사가들이 그날의 외침을 제대로 평가하리라 믿어요. 희망을 갖고 산다면 그날 우리가 외쳤던 그 희망의 땅이 반드시 오리라 믿어요.
-
-
풍경그림 2009/06/10 23:50
같은시대에 대학 생활을 했군요.
저는 간호학과라 실습중이였던 상황이였는데 ...
병원 실습도 마다하고 청치마 부대에 앞장섰지요.
지하철역은 여학생이라도 그냥 통과하기는 어려울정도로 인권 수치심을 불러일으킬 검문 검색을 받았고요~
자본주의 과학에 밀려 이유 아닌 이유로 점점 무지한 국민이 되어가는것같습니다.
글 너무 잘보았습니다.
늘 소중한 포스팅 감사하게 봅니다.
고향이 부산인가 봅니다.
저도 부산입니다.^^
고운밤입니다~ -
산위의 풍경 2009/06/11 06:27
시골 구석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잘 모를때가 많았지요. 제가 어릴때는....
모든분들이 그렇게 목청껏외쳤던....민주화.
어떤땐 허공의 메아리처럼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세미예님 깊은 포스팅 잘 봤습니다. -
eloveelove 2009/06/11 08:36
오늘은 2009년 6월11일 (목요일) 이네요. 어제 아는 사람 하고 길을 걷다가 두려움을 ..
보낸 트랙백에 있습니다. ( 경찰 예비대를 본것 같기도 하고..)


Prev

.jpg)
Rss Feed